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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디성경
이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이때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이 문제가 된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이 사건의 경우 병행본문(눅 5:17-26)에 조금 더 자세한 서술이 있어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흥미로운 건 18-20절이다: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에서는 그냥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다고 되어 있지만, 누가의 기록을 보면 그 병자가 예수를 만나..
2:1-4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 ]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각각 여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혓바닥 같이 갈라진다고 되어 있어서 뱀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고, 그래서 어쩐지 안 좋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여기서 혀가 사용된 더 중요한 이유는 ‘방언’이란 말 때문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혀와 방언이 둘 다 글롯사(γλῶσσα) 라는 말이다. 영어에서도 tongue 이란 말은 신체 기관 혀를 뜻하기도 하지만, mother tongue (모국어)에서 처럼 언어를 의미할 수 있다. 혀와 방언까지 보고 나면 1장 13절의 다락방( ὑπερῷον: 직역하면 위쪽 방) 또한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사건을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과 비..
굳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소위 '선악과'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고 인류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도 특별히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식은 특정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과일 하나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 대대로 죄인의 낙인이 찍혀야 한단 말인가? 먹지 말라고 할 거면서 신은 애초에 왜 그것을 만들었는가? 타락의 빌미를 제공하고 또 그것을 막아주지도 않은 신을 과연 선한 신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다. 나는 그들을 설득할 언변을 가지지 못한다. 단지 그들에게 이 대목이 무척 흥미롭게 쓰여져 있다는 것과, 이 대목을 조금만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적어도 억울함..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 믿는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말씀 중 하나다. 여기에 나도 포함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래 구절이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3) 둘 중 하나를 믿는다면 로마서의 말씀에 더 기대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인데 그 말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는가? 일단 로마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터 살펴보자. 여기 사용된 동사 ἐπικαλέω (에피칼레오)는 기도 중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경이 무오한 진리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은 적잖이 골치거리이다. 이 문제는 적어도 수백년 전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돈다고 주장하던 때 부터 제기된 문제이다. 나는 창세기 1장의 창조 과정에 대한 서술이 오늘날의 과학적 지식에서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나는 지구가 태양계의 행성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고 진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런 불편이 없다. 창세기 1장은 천체의 구조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때 교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천문학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그들의 무지를 인정하고 오늘날 되풀이하는 일이 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14) 우리말 '찾다'는 좀 아리송한 말이다. 어떤 것을 찾으러 다니는 과정과 행위를 의미 할 수도, 그 결과 무언가를 발견한 상태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와 비교하자면, 전자는 seek, 또는 look for 에 해당하고, 후자는 discover 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 말에서 찾는다는 말은 찾아오다, 누군가를 방문하다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때 우리말 '찾다’는 영어 send for, call for 등에 해당하는 의미가 된다. 그럼 위 본문에서 '찾는 이가 적다' 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 문을 찾고 있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