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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디성경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 본문

창세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

스테레오 2019. 2. 5. 23:50

굳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소위 '선악과'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고 인류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도 특별히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식은 특정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과일 하나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 대대로 죄인의 낙인이 찍혀야 한단 말인가? 먹지 말라고 할 거면서 신은 애초에 왜 그것을 만들었는가? 타락의 빌미를 제공하고 또 그것을 막아주지도 않은 신을 과연 선한 신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다. 나는 그들을 설득할 언변을 가지지 못한다. 단지 그들에게 이 대목이 무척 흥미롭게 쓰여져 있다는 것과, 이 대목을 조금만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적어도 억울함의 심정이 불신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1. 흔히 선악과라고 지칭되는 이 열매의 정식 명칭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이다. 그러나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의 열매가 금지된 것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원문으로는 êṣ (the tree)  had·da·‘aṯ (of the knowledge) ṭō·wḇ (of good) wā·rā‘ (and evil) 이라고 되어 있으니 우리말로는 선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라고 옮길 수도 있겠다. 이 나무가 선과 악을 알게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선과 악을 알게한다는 것인가? 선악과라고 하면 마치 그 열매가 특정한 효능을 발휘해서 신비로운 능력을 부여해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본문의 의미는 먹는 행위, 혹은 먹겠다는 의지 자체가 선악을 아는 것과 관련된다. 

2. 금령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나의 선을 그어 놓으셨다. 하지만 그것을 애초에 넘을 수 없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넘을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이 선을 넘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시면서도 그 능력을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자유야 말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인 것 같다. 

3. 그 선을 넘지 말라고 하시면서 덧붙인 말씀이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2:17)

이 부분도 보통은 '선악과를 먹으면 그 벌로 사형에 처하겠다'로 이해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 역시 원죄와 관련한 억울함의 심정이 반영된 것 같다. 하나님이 아담을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아담이 죽을 거다라고 되어 있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인간이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가질 때 결과가 죽음이라고 이해해보자. 인간 개개인이 다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라고 판단할 때 그 결과는 죽음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정녕 죽으리라'에서 정녕이란 단어는 원문으로는 muth 로 뒤에 따라오는 죽다와 같은 단어이다. 정녕 죽는다는 말은 '죽고 (또) 죽을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우리 말로는 '선악'을 쌍으로 붙여서 쓰지만 원문을 살펴보면 '선과 악' 혹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런 식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악을 붙여서 쓰는 경우 선한 , 좋은이란 의미의 towb이 이미 앞서 여러 번 아주 중요하게 사용된 말이라는 점을 감춰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단어는 1장에서 하나님이 매일의 창조 사역 끝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령은 그 나무를 보면서 선악을 판단하는 결정권을 스스로 가지려 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줬다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그 판단을 하게 될 때 결코 생명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가 함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5. 아담과 하와가 열매를 먹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일정한 가치 판단과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고 판단한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악 ra''이라는 하나님의 판단을 거슬러 하와 스스로 '보기에, 혹은 먹기에 좋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열매를 먹고 난 이후, 그러니까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알게' 된 이후 제일 먼저 한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비참하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3:7)

우리야 날 때부터 옷을 입고 살아왔으니 옷을 입다 혹은 벗다라는 말이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단 한 번도 옷을 입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여기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았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보기에 나빴다'는 가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심히 좋았다'(1:31)라고 판단한 바로 그 몸을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별개로 스스로 선악의 결정권을 가지고 제일 처음한 것이 자신(의 몸)을 나쁘다고 판단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은 첫 자식이 둘째 자식을 죽임으로써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실현된다. 

6. 내가 만약 첫 사람 아담이었다면 나는 그 열매를 먹었을까, 먹지 않았을까? 나는 절대 먹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원죄라는 건 어쩌면 인류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픈 욕망을 공유하고 또 틈틈이 시도하는 있는 우리의 현상태를 일컫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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