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 믿는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말씀 중 하나다. 여기에 나도 포함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래 구절이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3)
둘 중 하나를 믿는다면 로마서의 말씀에 더 기대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인데 그 말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는가?
일단 로마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터 살펴보자. 여기 사용된 동사 ἐπικαλέω (에피칼레오)는 기도 중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앞선 맥락을 볼 때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10:11)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에 비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경고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κύριος, 퀴리오스)"라고 부르면서도 "내 아버지의 뜻(θέλημα τοῦ Πατρός μου)"대로 행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이다. 23절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불법을 행한 자들(οἱ ἐργαζόμενοι τὴν ἀνομίαν)"이라고 지칭하고 계신다. 불법에 해당하는 단어 ἀνομία (아노미아)는 마태복음에서 이후에서 몇번 더 사용되는데, 현재 맥락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 13:41 ποιοῦντας τὴν ἀνομίαν (불법을 행하는 자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에 해당하는 자들을 지칭)
마 23:28 ἔσωθεν ... μεστοὶ ὑποκρίσεως καὶ ἀνομίας (안으로는 ...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만 바르게 보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마 24: 12 πληθυνθῆναι τὴν ἀνομίαν ψυγήσεται ἡ (불법이 성하므로: 세상 끝에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불법이 함께 성할 것이라는)
이 맥락들을 두루 살펴보면 예수님의 경고는 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평신도들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주를 따르고자 하나 살면서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넘어지곤 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은 다시 한 번 앞에서 가르친 기도를 상기시킨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10) 지난 글에서 기도란 하나님께 명령문(~을 하십시오, 주십시오)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말은 이게 명령인지 아닌지도 애매하게 번역되어 있는 게 아쉽다. 이 부분을 원문의 느낌을 살려 직역해보자.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Ὡς ἐν οὐρανῷ, καὶ ἐπὶ γῆς.
당신의 뜻이 이루어짐을 당하십시오. 하늘에서 그러하듯, 또한 땅에서도.
되다 이루어지다라는 뜻의 γίνομαι (기노마이)가 수동태로 사용되었기에 우리말로는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수동태야 말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수동태로 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위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략된 행위자는 기도하는 자 자신이며, 그런 자들의 공동체 즉 교회이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십시오'가 아니라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당신의 자녀들이 땅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앞의 기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에 의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인가? 다름 아닌 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결국 주기도의 앞부분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구하면서 그 기도가 이뤄지는 데 있어서 기도하는 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할 것을 바라는 기도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기도가 이루어지려면 기도하는 자 자신이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그런 자들은 외식하는 자들이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이 너무나 자명해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는' 행복한 일일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한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과연 낙원일 수 있을까? 우리는 구원, 천국, 부활이 좋은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욕망을 막연히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극치에 이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몰라서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고 기쁘게 실현되는 나라일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걸 소원하나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럴 마음 자체가 없는,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이라면) 그 나라에서 단 하루도 기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점에서 만인구원설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다시 회수해 가실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극치에 이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